소사댁이 만난 소사사람들

제목 부천에서 유일무이한 ‘민선 통장’ (파주쌀집 사장 이의만)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5.07.21 조회수 2289

떡 통장으로 통하는 심곡본동 30년 토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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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남부역 맞은편 성주산자락에 자리한 심곡본동 롯데아파트, 과거에는 시장 관사로 사용될 정도로 부천에서 알아주는 고급 아파트였다. 지금은 부천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하나둘씩 사람들이 떠나가고, 무심한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정문 앞에 파주 쌀집이 있는데, 이 집 주인이 바로 이의만 사장이다.

 

오직 성실함 하나로 버텨온 삶

한 때는 인근의 극동아파트, 송내동 삼익아파트와 함께 부천지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고층아파트였어요. 내로라하는 부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죠. 자리가 죽이잖아요. 부천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전망도 좋고, 성주산을 뒷동산처럼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의 가게에는 간판이 네 개나 걸려 있다. ‘쌀집’ ‘떡집’ ‘부동산’ ‘심곡본동 제14통 민원실간판에는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집주인을 굳이 만나지 않더라도 그가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일지 한 눈에 알 것 같았다.

“1981년부터 이곳에 살았어요. 벌써 30년이 되었네요. 어머니, 두 형님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롯데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1983년부터 쌀가게를 시작했어요. 군대에 막 다녀온 뒤였으니까, 스물세 살 때였겠네요. 장사경험은 전혀 없었죠. 그전에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으니까요. 그 후에 떡집을 열었고, 부천역에 이마트가 들어서면서, 벌이가 신통치 않아져서 아내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부동산중개소까지 하게 된 거죠. 돌이켜보면,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인생은 다 그렇게 살아지더라고요.”

그는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깨달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지금의 아내는 형수의 소개로 만났다.

형수님 동생 친구였는데, 주산학원 선생이라고 하더라고요. 암튼 눈에 뭐가 끼었었나 봐요. 처음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해서 데이트를 신청했죠. 사실, 제가 완전히 손해를 본 것이죠. 그 때 제 인기가 좋았거든요. 장사를 오래 하니까 아는 사람도 많았고, 어머니 모시면서 착실하게 일한다고, 중매를 선다는 아주머니들이 엄청 많았으니까요.”

그가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아내를 슬쩍 쳐다본다. 그의 아내가 눈을 한번 흘기더니 한마디 거든다.

얼굴에 나 성실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그 때도 그랬어요. 사람이 정말로 진실해 보였어요.”

그들 부부는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지금 큰 아이는 대학생이고, 작은 아들은 고3 학생이다. 그는 큰 아이를 볼 때마다 늘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첫째가 4학년 때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가 넓적다리뼈가 부러져서 한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어요. 보조기구를 착용하고 퇴원을 했다가, 다 회복이 되어서, 보조기구를 풀었는데, 바로 그 날 계단을 오르다가 넘어져서, 부러졌던 곳이 또 부러진 거예요. 그런데도 어린 녀석이 지가 뭐를 안다고, 자기는 괜찮다며, 부모를 안심시키려 하더라고요. 재수술을 하고 1년이 지나서야 보조기구를 풀었고, 재활치료만 6개월을 했어요. 매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가면서, 다시 걸을 수 있을 테니, 아빠만 믿으라고 했죠. 아들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래서 늘 고맙죠.”

그는 아이들이 잘 자라준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사람이다.

 

부천에서 유일한 민선통장이 되다

그의 성실함은 30년 동안 살아온 심곡본동 봉사활동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1992년 처음 새마을지도자로 뽑힌 후로 그는 각종 동 행사에 빠진 적이 없다. 이웃들의 대소사에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2008년에 통장이 되었다. 심곡본동에는 모두 15명의 통장이 있는데, 그는 유일한 민선통장이다.

통장을 뽑는다고, 주변에서 통장을 해보래요. 그래서 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다른 어떤 분도 신청을 했나 봐요. 지금은 동장이 점수제로 통장을 선출하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어요. 제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하자고 했어요. 동사무소에서 3시간 동안 투표소를 열고, 투표를 했어요. 개표결과, 표 차가 거의 배였어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저보고 민선 통장이라고 해요. 동네에서 떡집을 오래 운영해서인지 떡 통장이라고도 하고요. 김만수 부천시장님도, 저를 보면, 민선 통장, 떡 통장이라 부르며 놀리곤 하지요. 하하하.”

심곡본동 제14통 민원실은 그런 사연이 담겨져 내걸린 간판이다. 파주떡집은 늘 분주하다. 대부분은 손님이 아니라 민원인이다. 독감 예방접종은 언제, 어디서 하는지, 어디에 CCTV를 설치할 것인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가 맡아서 하고 있는 일들이다. 그렇게 그는 동사무소와 주민들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고민이 있다. 개인적인 고민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지역이 좀 더 활성화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비전이 없으니까, 사는 게 참 힘든 거 같아요. 개발이 되면 좀 나을 것 같은데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것 같고요. 이 동네는 집값이 내려가지도 않고, 오르지도 않아요. 그대롭니다. 그래서 제가 말해요. 예전에 역곡역 주변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동네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형건물들이 즐비하잖아요. 전에는 심곡본동이 부천시의 얼굴이었는데. 어찌되었건 이 동네가 발전이 돼서 여기서 오래 동안 살아온 사람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부동산을 하다 보면 많은 정보를 듣게 되니까, 가게를 팔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청춘을 다 바친 곳이라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고 싶은데, 지금 같아서는 장담을 못 하겠어요. 참 어렵거든요.”

2008, 심곡본동 일대가 자연녹지에서 일반주거지역으로 용도가 바뀌어 재건축이 가능해졌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성주산 등산을 한 달에 적어도 열 번은 해요. 소래산까지 다녀오죠. 힘들고, 피곤할 때, 성주산에 오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공기 좋고, 인심 좋고, 정말 살기 좋은 동네인데, 개발이 잘 되어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동네가 되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이 기회에 가게 자랑을 해야겠다며, 옆에 있던 그의 아내가 나선다.

마트에서 파는 떡은 대부분 공장에서 대량으로 납품된 거예요. 포장지에 재료 성분이나 유통기간이 쓰여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늘 찜찜하지요. 여기서는 모든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가 있어요. 그날 만든 떡을 그날만 팔기 때문에 그 만큼 신선하지요. 우리 떡은 하루만 지나도 곰팡이가 피어요. 몸에 해로운 첨가물을 전혀 안 넣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떡을 사가시던 단골 어른들이 많이 돌아가셔서 장사가 예전만큼 잘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떡집 안으로 햇살이 들어온다. 가게 문을 열고 나서는데, 파란 하늘이 두 눈 가득 들어찬다. 벌써 성주산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다. 그의 바람대로, 심곡본동 제14통 주민들 모두가 단풍잎처럼 알록달록 예쁘게 오래도록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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