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딛고 정의를 세우기 위한 행동하는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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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학생운동, 민주화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시민운동 30년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학생운동에 참여한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정치개혁, 그리고 환경운동과 진보여성운동의 대중화를 이끌어 왔다. 특히 시민의 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여성평우회(1983), 한국여성민우회(1987), 한국여성단체연합(1987) 창립에 기여하며 진보 여성시민운동의 리더로 활약했다. 시민사회운동 30년간 우리시대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 성평등, 양성평등, 환경 및 다양성 존중 등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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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대한민국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다.

      참여정부 시절(2006), 시민사회 대표로서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장관급)’에 임명되었다. 지속위는 환경, 경제, 사회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 UN이 규정한 기구이다. 김상희는 위원장을 맡은 뒤, 과거 7년간 논의되던 지속가능발전기본법 제정 및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18년간 대립되던 장항산단 문제를 소통과 타협을 통해 해결해냈다. 이에 국제사회는 당시 지속위의 활동을 국제적인 모범사례로 손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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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3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개혁세력간에 대립과 반목이 되풀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김상희는 ‘통합과 혁신’을 이루는 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과제라고 판단하고, 격랑의 정치현장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갔다. 시민사회 대표로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준비위원장(2007)과 최고위원을 맡아 위기상황에서도 통합을 이끌어 냈다. 이어 통합민주당 최고위원(2008)과 전국여성위원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MB정권의 독선과 민주주의 퇴보를 막기위한 투쟁에 민주 정당이 함께 힘을 쏟는데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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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4MB정권 시절, 국민지킴이로 주목받은 진보적 초선의원

      이명박 정권은 임기 초반(2008)부터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4대강 대운하 사업’, ‘언론장악’, ‘부자감세’ 등 반민주ㆍ반서민 정책을 밀어붙였다. 특히, 공권력으로 국민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용산참사’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은 무시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민주당 비례대표(제18대 국회, 2008)로 국회에 입성한 김상희는 민주당 한반도운하백지화추진위원장, 한미쇠고기재협상추진위원장을 맡아 국정조사를 진행하는 등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맞서 국민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에 진력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 전국여성위원장, 국회 여성위 간사, 환경노동위원으로 활동하며 용산참사 등 뉴타운 사업의 대책 마련에 앞장서고, 사회적 약자 보호, 실업대란 및 비정규직법 개악 저지, 언론악법 무효화 투쟁 등의 의정활동을 통해 국민 지킴이’로 주목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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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5개혁 정치의 불모지 소사에서 민주세력의 역사를 다시 세우다

      부천 소사지역은 김상희 의원이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지난 2012년 이전 16년간 동안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변천해 온 보수정당의 아성이었다. 18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이었던 김상희는 19대 국회 지역구 의원으로 국회에 재입성 하는데 성공했다.그녀가 부천 소사에서 당선된 것은, 부천 지역 첫 여성 국회의원의 탄생이라는 의의도 있지만, 더 큰 의미는 개혁정치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받아온 소사지역에 민주개혁의 바람을 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상희는 끊임없는 소통과 변화에 대한 추진력으로, 2번의 지방선거와 2번의 총선에서 진보세력의 승리를 이끌어 냈다. 또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선전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등 소사구를 명실상부한 개혁정치의 텃밭으로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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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6김상희, 여성ㆍ가족ㆍ청소년ㆍ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보듬다.

      재선 국회의원이 된 그녀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제19대 국회, 2012)으로 또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2012)되어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 여성인권 증진, 적극적 조치인 할당제를 통한 여성의 대표성 강화와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개선에 앞장서 왔다. 특히 성폭력 범죄의 친고죄 폐지와 양육비이행 및 지원의 관한 법률이 마련되어 한부모의 양육비 부담에 대해 국가의 역할을 이끌어냈다. 또한 비정규 여성노동자의 사회보험 확대, 아동청소년인권법 제정, 성차별금지법 제정안, 여성발전기본법 전부개정안 등 대표적인 입법활동과 국회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촉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명예회복 등 어느 분야도 소홀함 없이 촘촘하게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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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땀으로 적신 소사댁 김상희, 변화를 만들어 내다.

      2010년 소사지역위원장을 맡은 이후 지난 7년간 구석구석을 누비며 소사주민들과 활발한 접촉과 소통의 노력을 인정받아, <소사댁 김상희>라는 애칭을 얻었다. 지역 최대 현안인 뉴타운 문제를 해결하면서 법 개정 및 정부 정책의 전환을 이끌어 내어, 국회에서 ‘뉴타운 해결사’로 불리기도 했다. 쇠퇴한 원도심 시설과 낙후된 학교시설을 살리기 위해 ‘교육명품특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다목적 체육관 7개교, 학교 석면제거사업 9개교, 급식실 2개교 등 획기적으로 학교시설이 개선되었고, 국토부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되어 주민 부담이 없는 마을살리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원시-소사-대곡’ 전철을 착공시켰고, 만성정체에 시달리던 범안로 확장 사업이 시작되었으며, 그럴듯한 청소년 문화시설이 없던 소사에 청소년수련관 건립을 착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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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83선 국회의원 김상희. 이슈의 가운데엔 항상 그녀가 있다.

      3선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면서, 김상희는 국민의 요구를 회피하지 않았다. 과거 무책임한 정치의 소산인 뉴타운 등 재개발 사업의 문제를 들춰, 도정법 및 도촉법 개정을 통해 과감한 출구전략을 마련했다. 대학 등록금 인하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저지시키기 위한 법 개정을 위해 노력했으며, 해병대캠프 · 세월호 참사를 방지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19대 국토교통위원 시절 서민 전월세 부담 경감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20대 국회에서 민생경제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서민 금융보호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는데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 국정농단을 파헤치며 청와대 납품 의약품 리스트(백옥주사, 비아그라 등)를 세상에 밝혀, 국정조사와 특검에서‘의료게이트’를 조사하도록 하는 단초를 제공한바 있다.